지하에서 꿈틀대는 백인우월주의 직시해야 할 불편한 진실

약 150년 전 지금의 BC주 자리로 중국인 이주자들이 몰려오던 시절 이 고장에 이들보다 조금 먼저, 또는 비슷한 시기에 자리잡은 백인들이 이들을 멸시하고 박대했음은 잘 알려져 있다. 당시 중국인 노동자들이 받은 임금은 백인의 절반이 될까 말까였기 때문에 백인 고용주들은 이들을 선호하는 경향이었지만, 백인 노동자들은 중국인들 때문에 자신들의 몸값도 깎인다며 아우성쳤다. 노동계가 앞장서 중국인들이 더 이상 이 고장에 오지 못하게 인두세, 즉 입국부담금을 물려야 한다는 여론을 조성했다. 빅토리아의 한 일간지(Daily British Colonist)는 사설을 통해 인두세에 반대한다며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중국인들은 유럽인이나 미국인에 비해 에너지와 능력 면에서 열등할 것이다. 또 인종, 언어, 관습 면에서 우리에게 부적합해 우리 사회에 천민으로 남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인내심이 있고, 잘 순종하며, 하나같이 부지런하다. 장차 그들이 필요 없게 되면 우리는 그들의 이민 금지를 성심껏 지지할 것이다.
Chinese may be inferior to Europeans and Americans in energy and ability; hostile to us in race, language and habits and may remain among us as a Pariah race; still they are patient, easily governed and invariably industrious. Hereafter, when the time arrives that we can dispose of them, we will heartily second a check to their immigration.”아시아인 이민 금지 지지 만평

백인이 유색인에 비해 우수하다는 주장을 ‘백인우월주의’라 부르며 이 주장이 트럼프의 집권과 함께 미국 백인사회에서 불거지기 시작해 캐나다에까지 영향을 줄 우려가 있음을 지난 주 이 칼럼에서 썼다. 백인우월주의는 19세기에서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유럽과 미국에서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었다. 러디어드 키플링같은 탁월한 영국 문인조차도 ‘인자한 형태의 제국주의’를 통해 유색인들을 문명세계로 인도하는 것이 백인의 의무라는 의견을 폈었다.
오늘날 서양문명이 지구를 온통 지배하는 상황이니 백인우월주의가 일리 있다는 생각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수 천년 인류 역사에서 백인이 유색인의 문명을 압도한 것은 근세의 몇 백 년에 불과하다는 점을 깨달아야 한다. 이 시기 지리상의 발견, 문예부흥, 산업혁명 등의 계기가 유럽에 집중해서 발생하면서 서양이 동양을 리드했지만 서양의 고대에서 중세에 해당하는 시기에 중국 이집트 인도 등의 문명이 세계 정상이었음을 서양인들도 인정한다. 지능 덕성 체력 등 유전형질 면에서 백인이 더 우수하다는 주장은 더욱 터무니 없다.
1960년대 미국에서 흑인 민권운동의 거센 회오리가 지나간 뒤에야 백인우월주의가 공론의 장에서 설 자리를 완전히 잃고 지하로 숨어 들었다. 전문가들은 그러나 트럼프의 집권을 전후해 나타난 몇 가지 징후를 근거로 캐나다의 BC도 이 문제의 완전한 무풍지대가 아닐 수 있다는 경각심을 일깨운다.
그 징후 중 하나가 작년 10월 BC주 선관위에 등록을 마친 극우 정당 문화행동당(Cultural Action Party)의 출범이다. 이 당은 다문화주의 폐기와 소수민족 이민 반대를 정강으로 내세웠다. 대표인 브랫 샐즈버그(밴쿠버 거주)는 창당 직후 한 신문과의 인터뷰에서 당장은 군소정당에 불과한 이 당이 트럼프의 기세와 유럽의 극우정당 부상과 맞물려 앞으로 주류 정당이 될 것이라고 호언했다. 이 정당이 출범한 시기는 중국 자본에 의한 투기가 중요한 원인이 돼 이 고장 집값이 폭등했는데다 리치먼드에서 영어 없는 중국어 간판 문제로 동양인에 대한 백인들의 감정이 악화된 시기였다는 점이 주목된다.
‘오딘의 전사들(Soldiers of Odin)’이란 이름의 또 다른 극우 조직도 지난 가을 이 고장에서 발족했다. 이 단체는 2015년 핀란드에서 반(反)난민 운동 단체로 출범했고, BC 내 조직은 그 지부에 해당한다. ‘오딘’은 바이킹 신화에 나오는 전쟁 신의 이름이다. BC지부 대원들은 오토바이 갱과 비슷한 유니폼을 차려 입고 아무도 요청하지 않았는데도 떼를 지어 밴쿠버 시내 순찰에 나섰다. 이들은 자신들이 시내 치안을 지키는 자원봉사자일 뿐 인종차별주의자가 아니라고 강변하고 있지만 전문가들은 이들을 경계해야 할 극우 집단으로 보고 있다.
지난 연말 칠리왁 애벗스포드 등 프레이저 밸리 지역 여러 가정집들에 ‘KKK’ 명의로 팸플릿과 소포 등 괴(怪)우편물이 우송된 사건도 백인우월주의 준동인 것으로 보인다. KKK(Ku Klux Klan의 약자)는 19세기 말 미국 남부에서 시작된 뿌리 깊은 백인우월주의 폭력 집단이다. 공포심 조성책으로 이들 우편물이 보내진 것으로 알려졌다.
이 글 시작부에서 중국인에게 편협했던 BC 백인사회 얘기를 꺼냈지만 지금의 캐나다는 세계에서 모범적인 열린 나라이고, 이
런 특성이 작금의 변화 때문에 단번에 훼손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이 나라 권위 있는 여론조사기관 중 하나인 엔비로닉스(Environics)가 작년 10월 실시한 조사에 따르면 이 나라 사람의 4분의 3 이상이 이민 영입이 나라 경제를 위해 좋다고 응답했다. 또 이민 온 사람들이 캐나다 식 가치관에 동조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근년에, 특히 재작년까지 보수당 집권 기간에 자주 나왔지만 이 번 조사에서 응답자들은 이 문제를 별로 우려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외국에서 태어난 사람도 캐나다 태생자와 마찬가지로 좋은 시민이 될 수 있다고 보는가?”의 질문에 10명 중 9명 꼴로 “예스”로 응답한 데서 이를 알 수 있다.
이런데도 필자가 백인우월주의를 우려하는 것은 그 것이 모국을 떠나 이 나라에서 소수민족으로 사는 우리가 어쩔 수 없이 떠안아야 할 잠재적 부담이기 때문이다. 불편한 진실을 직시해야 이성적 대응이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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