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오범죄 부추기는 듯한 트럼프… 캐나다 백인우월주의 활성화 우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에게는 놀라운 장점이 있다. 취임과 함께 바로 대선 때의 약속을 지키려는 조치들을 쉴 새 없이 내놓고 있는 것이다. 이슬람권 일곱 나라 국민들의 미국 입국을 금지하고, 난민 유입의 문을 잠정적으로 닫았다. 또 멕시코인 불법 이주를 막기 위해 두 나라 국경에 차단벽을 설치하는 행정명령을 내렸다. 중국 독일 일본 등 주요 교역국들을 환율조작국이라고 단정하고 이를 시정하지 않으면 불이익을 주겠다고 위협했다.
국내적으로는 영주권자를 포함해 미국에 합법적으로 머무르는 외국인이 미국의 저소득층 구제 프로그램에 의존할 경우 추방하는 법을 만들도록 했다. 또 오바마가 어렵사리 출범시킨 의료보장, 즉 오바마케어(Obamacare)를 백지화시키는 작업을 비롯해 전임 대통령 업적 지우기도 시작됐다. 취임 후 불과 3주 지난 현재까지 나온 시책들이다.
문제는 이들 조치 대부분이 인도주의에 역행할 뿐 아니라, 세계의 리더로서 지금까지 미국이 지켜온 미덕, 즉 최강대국으로서의 일정한 희생과 솔선수범을 팽개치는 시책인 점이다. 대다수의 세계인이, 그리고 많은 미국인이 ‘후보 트럼프’가 표를 얻기 위해 달콤한 약속을 내걸었을 뿐 ‘대통령 트럼프’는 그렇게 까진 못할 것이라고 내다봤으나 예상이 빗나갔다.
이 때문에 세계가 혼란에 빠졌다. 영주권자로 미국에 살면서 모국을 방문했다가 다시 미국에 입국하지 못해 이산가족이 될 위기를 맞은 사람들을 비롯해 미국에 가려고 준비했다가 좌절된 많은 이들이 충격에 휩싸였다. 저소득 미국 영주권자들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못 받거나 아예 쫓겨나지 않을까 걱정한다.
멕시코 대통령은 트럼프의 거친 공세에 반발해 예정됐던 미국 방문을 취소했다. 트럼프와 호주 총리 간 당초 한 시간 예정으로 시작됐던 전화 협상은 트럼프가 화를 내며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는 바람에 25분 만에 끝났다. 두 정상은 호주에 무작정 입국하려다 제지를 받아 호주 근해 섬에 억류된 난민 중 일부를 미국이 수용하는 문제를 협의 중이었다. 이미 오바마 정부와 호주 간에 이들 난민 일부를 미국이 떠안겠다는 합의가 돼 있었으나 트럼프가 이를 뒤집으려다 말싸움이 났었다.
이슬람 나라 사람 입국금지 조치에 대해서는 미국 사법부 일부 판사와 여러 주정부들이 반기를 드는 바람에 제대로 시행되지 못하고 소송에 들어감으로써 일단 유예된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 하겠다. 이 모든 트럼프 정책들을 관통하는 키 워드가 미국 우선(America First) 주의와 백인우월주의(White Supremacy)다.
이 중에 미국우선주의는 그 동안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서 큰 그림을 보면서 펼쳐온 정책의 상당 부분을 포기하고 미국 이익을 앞세운다는 뜻이다. 이는 트럼프가 그동안 외쳐온 ‘위대한 미국으로의 복귀(Make America Great Again)’ 슬로건과 반대로 옹졸하더라도 당장의 이익을 좇는다는 모순을 안고 있지만 그것이 미국인의 주권에 의한 결정이라면 정면으로 비난하기 어렵다. 더욱 심각한 문제가 백인우월주의다.
백인우월주의란 백인이 유색인종에 비해 능력 소질 유전형질 등의 면에서 우수하며 따라서 백인이 유색인종에 대해, 요즘 한국의 시쳇말로 갑질을 하는 것이 정상이라고 믿는 정치관을 말한다. 히틀러 시절의 나치즘이 가장 대표적인 백인우월주의다. 당시 독일인들은 백인, 그 중에서도 독일인의 주류인 게르만족이 가장 우수한 인종이기 때문에 독일제국 내에서 유대인 집시 등 다른 인종은 ‘씨를 말려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치 독일은 패망했지만 나치즘과 유사한 극단적 사고 방식은 유럽 각국과 캐나다를 포함한 북미 등지에서 여태 살아남아 죄악의 씨앗이 되고 있다. 이들의 정치관은 극단적 자국 우선주의를 앞세우는 극우(far right) 정치이념과 겹치는 경우가 많다.
트럼프 행정부 요직 중 많은 수를 백인우월주의자가 차지하고 있다. 그 대표적 인물이 백악관 수석 전략가 스티브 배넌(63세)이다. 그는 트럼프에 스카웃되기 전까지 백인우월주의이자 극우를 표방한 한 인터넷 매체의 대표를 지냈었다. 자신은 부인할 지 모르나 트럼프가 바로 백인우월주의자인 것으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현재 미국연방수사국(FBI)의 테러방지 정책 대상에는 소수민족이 미국인 대중을 상대로 벌이는 테러행위는 물론 그 반대 행위, 즉 백인이 소수민족을 상대로 벌이는 테러도 포함돼 있지만 앞으로는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트럼프 행정부가 후자를 정책 대상에서 빼고 오직 소수민족이 벌이는 테러만 대상으로 할 계획임이 최근 누출된 기밀문서에서 확인됐다고 로이터 통신이 보도했다. 이대로 가면 백인우월주의자가 소수민족에게 자행하는 테러를 미국정부가 권장한다는 비난까지 받을 수 있다.
미국내 백인우월주의의 영향은 곧바로 캐나다에 미치게 된다. 실제로 지난 달 말 퀘벡 주 한 이슬람 사원에서 자행된 총기 난사 사건의 범인(27세, 백인 대학생)은 스스로 트럼프 추종자라고 밝히고 있다. 이 사건에서 6명의 이슬람 교도가 살해됐다. 지금까지 캐나다에서 극우 백인들이 벌인 증오범죄(hate crime)는 미국에 비춰 볼 때 미미한 수준이고 그 대상도 거의 이슬람교도들에게 집중됐다. 이때문에 이 나라 치안 당국이나 언론은 이슬람 테러리스트들에 대해서만 경계하고, 그 반대쪽에는 신경을 끄고 있던 차에 이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이 아니더라도 캐나다에서 사정이 달라져 가고 있음을 미국 뉴욕타임즈(NYT) 신문이 1월 31일자로 보도했다. 이 신문은 캐나다 내에 최소 100개의 백인 극우 단체가 결성돼 있으며 BC주에도 이들이 활동하고 있다고 밝혔다. 캐나다 통계 당국에 따르면 현재 추세로 이민자 유입이 계속될 경우 2036년 경 캐나다 인구 중 백인과 백인 아닌 사람 수가 거의 반반에 이르게 되는데 이 추세에 맞춰 이 나라가 백인의 땅이라고 믿는 극우 백인들의 유색인종에 대한 반감이 늘어갈 가능성을 이 신문은 제기했다.
BC주 한국 교민들은 이런 달라진 여건 속에서 안전할 것인가? 다음 주에 이 문제를 짚어 본다.

황용복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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